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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등의 의미 / 2011.03.08

    페이지 정보

    작성자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Hit 114회 작성일Date 20-01-29 06:28

    본문

    연등(燃登)이라 함은
     부처님께 공양하는 방법의 하나로
     번뇌와 무지로 가득찬 어두운 세계(無明)를 밝게 비춰주는
     부처님의 공덕을 칭송하고 깨달음의 세계에 이르고자
     등(燈)에 불을 밝히는 것을 말합니다.

    삼국시대 신라

     이러한 연등이 기록상으로는 삼국시대 신라에서는
    '간등(看燈)'이란 이름으로 신라 진흥왕(서기 551년)때에
    戰死한 士卒을 위하여 外寺에서 7일동안 설행 (국가에서 행사를 주관하고,
    국왕이 참여함)되었고 선덕여왕 때에는 황룡사에서 열렸다는 것 외에도
     다수의 기록이 있는 등 신라 이래로 국가차원에서 열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려시대

     고려시대에 들어서는 전통의례와의 습합(習合)과정을 거치면서
     더욱 성대히 국가적 종교놀이 문화로 발전하여 그 절정을 이루었는데
    『春燃燈 冬八關』 이라하여 연등도감(燃燈都監)과 팔관보(八關寶)라는 행사주관기구를 두고
     국가에서 직접 재원을 조달하고 주관하는 전국가적 행사로 발전하였습니다.
    11월 15일에는 팔관회를,
    2월 15일에 풍년을 기원하면서 연등회를 개최하여
     온 백성이 잔치를 베풀고 가무를 즐겼습니다.
    고려말기 공민왕 이후에는 많은 종류의 등을 만들어
     각종 깃발로 장식한 등대(燈臺)에 등을 달아
     온누리가 연등일색으로 변한 저녁에 온 장안의 남녀노소가 함께 즐겨던 것입니다.

    조선시대

     조선조에 들어와서도 초파일 연등은 계속됐는데
     연등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초파일에 등밝히기는 계속되어 왔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밤에 통행금지가 있었습니다.
    통금시간이 되면 종이 울리고,
    그후에는 거리에 사람들이 다니는 것을 금했지만
     초파일만은 통금이 해제됐을 정도로
     사월 연등은 민간에 깊이 뿌리박고 있었습니다.
    민간에서는 연등회에 이루어졌던 각종놀이를 하는등,
    세시풍속으로 정착되어 계승되었으나

     해방후에는 민간에서는 점차 사라지고 사찰에서나 명맥을 이어왔습니다.

    현대의 의미

     결국 이러한 종교축제(종교놀이문화)는
     국가와 국민이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여
     불교적 사회분위기를 조성하고 국민들에게 일체감을 부여하여
     국가 사회적 안정을 도모할 수 있었습니다.
    삼국시대 신라이래 지금까지 1,500여년 동안 민중속에 깊이 뿌리내려온 연등행사가
     근래에 이르러서는 불교인만의 행사로 되있었으나
    2540(96)년부터 '전통등'을 복원, 계승하여 연등축제로 이름 붙이고,
    시민, 외국인이 참여하는 전통 문화 축제로 발전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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