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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지장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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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공당성진스님

    (妙空堂 性眞스님)(1896~1983)



    진성(眞性)은 원명(圓明)하여 십방(十方)에 두루하고 그 작용무애(作用無愛)하여 언어문자에 속하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최상종승(最上宗乘)은 형상과 명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므로 달마(達摩)는 불립문자하고 직지인심(直指人心)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케하는 방법을 제창하였다.

    고(故)로 문수(文殊)의 대지로도 출정시키지 못한 여자의 선정을 평범한 망명보살(網明菩薩)이 출정시켰고 유실한 황제의 현주(玄珠)를 앞을 보지 못하는 맹자가 찾았던 것이다. 이곳 지장암(地藏庵)에 출가하여 글은 전혀 몰랐으나 오로지 순일무잡한 굳은 신념으로 서래밀지(西來密旨)를 탐구하면서 대중시봉(大衆侍奉)과 가람수호의 외호자(外護者)로서 의지할 곳 없는 외로운 사람들의 자비한 어머니로서 고행정진(苦行精進)하여 후인들에게 천고의 모범을 보여준 스님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묘공당(妙空堂) 성진 비구니(比丘尼)스님이다.

    스님의 휘는 성진(性眞)이요 호는 묘공(妙空)이며 속성은 손시오 본관은 안동이며, 아버지는 동권 어머니는 안동장씨니 1896년 병신 8월 25일 무남이녀중 둘째딸로 태어났다. 품성이 온유하고 모습이 단정할 뿐만 아니라 효심이 지극하였다.

    스님은 홀어머니의 사구 제때 한암대종사(漢巖大宗師)의 법문을 듣고 발심하여 출가입산(出家入山)을 결심하고 그 해 3월 십오일 월정사 지장암 스님을 은사로 한암(漢巖)스님을 계사로 하여 사미니계(沙彌尼戒)와 보살계를 받았다. 그후 큰 원을 세우고 지장암에 선방을 마련하여 매년 동하안거(冬夏安居)때마다 삼십여명의 선중외호(禪衆外護)하다가 1950년 6.25 한국전쟁을 만났다.

    대중은 모두 남방으로 피난을 떠나고 병든 노스님 세분만 남게되자 스님은 사하촌(寺下村)으로 노스님들을 모시고 시봉하면서 지장암을 지켰다. 폭격으로 잿더미가 된 지장암에서 1952년 상좌인 혜종에게 지장암 운영을 맡기고 큰 대중에서 수도코자 울산석남사(蔚山石南寺) 인홍(仁弘)스님 회상으로 가서 남들이 기피하는 산감소임을 맡아 도량과 산을 돌보면서 항상 화두를 놓치 않아 일념만년거(一念萬年去)로 동정일여(動靜一如)를 체험하였다.

    1961년 지장암복구불사(地藏庵復舊佛事)를 위해 지장암에서 백일지장기도(白日地藏祈禱)를 봉행하던 중 회향 전날 밤 팔대보살이 앞에 서고 일만지장보살이 나타나 스님의 이마를 만지고 장상명주(掌狀明珠)를 건네주는 서상을 감득하였다. 그로부터 법당 삼성각 등을 일신중창(一新重創)하고 1964년 시월 십오일 낙성법회(落城法會)때 월정사주지 탄허대종사로부터 표창장을 받았으며 1973년 육화료(六和寮)를 신축하여 한국전쟁 이후 비로소 선원이 개설되어 안거철마다 삼십여납자(三十女衲子)가 괘방(掛榜)하고 머리의 불을 끄듯 정진하니 수많은 눈푸른 비구니납자들이 오대성산을 거쳐가고 있다. 1983년 2월 12 세수 88세 법랍 42세를 일기로 조용히 입적하였다. 손장좌인 정안비구니가 폐허에서 수도도량(修道道亮)을 일구어 내신스님의 자취를 후대에 길이 전하고자 나에게 비문을 청하기에 사실대로 기록하고 이를 다음과 같이 찬명(讚銘)하는 바이다.


    오대산중월정사(五臺山中月精寺)는        자장율사창건(慈藏律師創建)하고
    불사리(佛舍利)를 봉안(奉安)하니             많은 불자귀의(佛子歸依)하다
    동대에는 일만관음(一萬觀音)                   서대에는 일만세지(一萬勢至)
    남대에는 일만지장(一萬地藏)                   북대에는 아라한
    중대에는 일만문수(一萬文殊)                   오만성중(五萬聖衆)계시옵고는
    성지중의 성지이며                                         사리중(寺利中)의 으뜸일세
    성진니(性眞尼)의 원력으로                         지장암(地藏庵)을 하원하여
    많은 잡자정진(鉔子精進)하니                   오만성중미소(五萬聖衆微笑) 짓다

    은법제자(恩法弟子)   혜종(惠宗)   대하(大河)   혜안(慧眼)   법화(法華)   자인(慈忍)   보명(普明)
    은손상좌(恩孫上左)   정안(淨岸)   정엽(淨葉)   정인(淨仁)   정운(淨雲)   준민(俊旼)


    <약력>
    1) 1896년 음력 8월 25일 : 강원도 삼척에서 손씨의 차녀로 출생
    2) 1942년 음력 3월 15일 : 강원도 오대산 지장암으로 출가
    3) 1943년 음력 10월 15일 : 오대산 상원사 한암스님으로부터 보살계와 사미니 수계
    4) 1950년 : 오대산 상원사 한암스님으로부터 비구니 수계
    5) 1950년 : 30여명의 지장암 대중들이 모두 남방으로 피난길을 떠나고, 병든 노스님 세분과 함께 마을에 남아 노스님들을 시봉함.
    6) 1952년 : 한국전쟁을 만낭 오대산과 지장암이 잿더미가 되는 비운을 맞음.
    7) 1952년 : 두칸짜리 토막집을 짓다. 1945년에 출가한 혜종스님에게 토막집 지장암 운영을 부탁하고, 경남 울주에 있는 석남사 인흥스님을 찾아가 산감을 살며 정진
    8) 1961년 : 법당불사를 하기위해 지장암으로 돌아옴.
    9) 1973년 : 인법당과 삼성각을 완공.
    10) 1973년 : 육화료 건물을 완공하시고, 1975년에 법당을 개설하여 한국전쟁이후 처음 선원을 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