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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지장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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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종(慧宗)스님

    (1930~1995)



    선사의 속성은 권씨(權氏)이고 본관은 안동이며 법명은 혜종(慧宗)이시다.
    서기 1930년 8월 22일 강원도 명주군 연곡면 퇴곡리에서 출생하셨다.
    뜻하신바 있어 성진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시어 1945년 탄허(呑虛)스님과 일타스님으로부터 사미니계와 비구니계를 수지하였다.
    혜종스님이 출가할 당시, 오대산은 한국전쟁으로 인해 상원사를 제외한 각 사, 암이 국군의 작전상 방화로 소실되어 잿더미로 변하고 토막집에서 겨우 색신을 의탁하여 부처님께 예불을 올리는 정도였다.
    이러한 어려움에 처해 있는 지장암에 출가한 혜종스님은 한번도 지장암을 벗어나지 아니하고 은사 성진선사와 인성선사의 깨우쳐 주심을 받으며 북방 최초 선원인 지장암을 복원하여 운수납자들이 정진의 꽃을 피울 것을 발원하였다.

    1960년 서울 혜화동에서 큰 여관을 하던 대광명(大光明) 보살과 함께 지장암 법당복원을 발원하였다.
    성진, 인성, 혜종스님, 대광명보살, 혜안보살과 함께 시작한 법당불사는 대처, 비구 정화시절이라 법당 기둥감나무 하나라도 자르면 고발과 투서가 들어갔으며, 마침내는 혜종스님이 평창경찰서에서 벌목 죄로 몇 날을 지내기까지 하였었다.
    이러한 우역곡절을 겪으며 1963년 8월 24일에야 상량식을 할 수 있었고 1964년 법당과 삼성각 불사를 마무리하였다.
    그해 1964년 10월 15일에 탄허스님으로부터 지장암 불사공덕을 인정받아 혜종스님이 표창장을 받았다.
    대광명보살은 개인재산을 정리하여 지장암 법당 불사에 시주하고 지장암이 복원되자 이곳으로 거처를 옮기고 보살의 신분으로 수행 정진하다가 1974년 1월 16일 생을 마감하였다.

    혜종스님은 선원개원 할 것을 줄곧 발원하여 1972년 수각채와 목욕탕을 지어서 노천에 있던 물에 집을 만들어 비를 맞지 않고도 물을 먹을 수 있게 하였고, 목욕탕을 만들어 사찰내(철로 만들어진 둥그런 욕조)에서 목욕을 할 수 있게 하였다.
    이어 1947년 육화료(六花曢)가 중창되자 성진스님과 인성스님은 육화료로 거처를 옮기고 한국전쟁 이후 두칸으로 지었던 토막집을 헐었다. 이렇게 혜종스님이 중심이 되어 지장암을 복원할 수 있었던 것은 은사 성진스님과 석남사 인성스님이 사찰내에서 부사를 뒷바라지를 모두하여 주었고 또 속가의 부친 권오선 처사가 공사현장에서 감독을 맡아 보살펴 주었기 때문에 혜종스님은 복원불사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지장암 복원이 실질적인 노고의 주인공인 은사 성진스님은 1983년 음력 2월 12일 열반하셨고 인성스님은 1974년 제자 현묵스님이 있는 석남사로 거처를 옮기셨다.

    1975년 하안거에 석남사 현묵스님을 비롯하여 40여명의 스님들이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지장암에서 하안거를 하였다. 인법당을 이용하여 매년 하안거에 정지을 하였으나 해가 거듭할수록 협소함이 더해 갔다.
    그러하여 혜종스님은 1992년 선원 신축할 것을 발원한 뒤 더 이상 방부를 받지 못하고 석남사 인흥스님 사주를 선두로 하여 서울 이동주 처사등 많은 신도들의 동참으로 3년에 걸쳐 법당 우측에 지층을 겸한 90평 규모의 선방을 신축하여 완공하였다.


    신심   소멸   습기    信心   消滅   濕氣
    참회   훈수   죄업    參會   勳修   罪業
    염불   정화   육문   念佛   淨化   六門
    자연   방광   자성    自然   放光   自性


    신심으로 습기를 소멸하면 참회로 죄업을 닦고 염불로 육문을 정화하면 자연히 스스로 성품이 드러나서 부처를 실천하게 된다라고 생활선을 강조하시면 후학을 깨우치시던 가르치심을 뒤로하고 1995년 음력 8월 8일 법남 41, 세납 65세로 홀연히 열반에 드셨다.
    오늘날 지장암은 아직도 한국전쟁의 참상의 때를 벗지 못하고 열악한 조건과 어설픈 시설이지만 성진, 의성, 혜종스님의 각고의 노력과 수행의 결실로써 한국 북방 최초 비구니 선원으로 그 명성을 유지하며 인류의 어머니, 세상을 밝게 할 부처들을 배출한다는 밝은 뜻 거룩한 발원으로 참선 승려들의 수행도량으로서 또 지옥중생을 남김없이 제도하겠다는 지장암의 원력이 서린 성지로 현존하고 있다.
    혜종스님의 입적으로 상좌 정안스님이 후임 감원을 맡아 1년 소임을 살았으며, 은사 혜종스님의 갑작스런 입적으로 무상을 느낀 정안스님은 3년을 기한하고 참선공불를 떠났다. 대전 법륜사 길상스님이 감원을 살면서 선원 큰방과 다락에 벽장을 만들고 선원현판을 조각하여 걸었으며 새로 지은 건물에서 1997년 처음으로 하안거를 열었다. 이어서 98, 99 하안거를 지냈다.
    참선공부를 하러갔다 돌아온 정안스님은 제방의 바램과 본사 현해회주스님께서 오대산 성지에서 비구니 선원이 하안거만 개설되는 것을 안타까워하심을 헤아려 본사 현해회주스님의 원력과 정안스님의 신심으로 1999년 10월 14일 동안거를 개원하여 열악한 조건이지만 하안거를 겸비한 선원으로 서의 진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오늘날 지장암이 운수납자들의 도량이 되기까지는 성진, 의성, 혜종스님, 화주 대광명보살, 동참회주자 혜안보살, 강릉 지묘행 보살의 원력과 처절한 노고가 온도량 곳곳에 스며져 있다.


            상좌 : 정안, 준민

            손상좌 : 지수, 지훈, 지용, 지륜, 지광, 지현, 해만,
            지수, 지중, 지도, 지경, 지설, 지호, 지한, 지관, 지엄, 지인, 지명, 지단, 지행


    <약력>
    1) 1930년 : 음력 8월 22일 강원도 명주군 연곡면 퇴곡리에서 출생
    2) 1953년 : 오대산 지장암으로 출가
    3) 1954년 : 월정사에서 탄허대선사와 일타스님으로부터 사마니계와 비구니계를 수계
    4) 1954년 : 월정사 노전스님에게 의식절차를 사사
    5) 1955년 : 탄허대선사로부터 사집사사
    6) 1961년 : 지장암 법당, 삼성각 복원 불사시작
    7) 1963년 : 8.24 법당 상량식
    8) 1964년 : 10월 15일 탄허스님으로부터 지장암불사공덕을 인정받아 표창장 수여
    9) 1972년 : 수각채, 목욕탕 완공 (현 식당건물)
    10) 1975년 : 한국전쟁이후 지장암이 복원되고 인법당을 개원 처음으로 석남사 현묵스님을 비롯하여 전국 40여명의 선승들이 하안거 성료 1992년까지 매년 하안거를 개설
    11) 1994년 : 90여평의 1~2층 기린선원 신축완공
    12) 1995년 : 8월8일 홀연히 열반하다.